DAMIRAT iraer/tiaroe 앨범 리뷰
2013-12-04



DAMIRAT의 데뷔앨범과 막연함 

수개월 전 김창희란 청년이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로 찾아왔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이제 막 데뷔앨범 발매를 앞둔 DAMIRAT라는 전자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레코딩과 믹스다운 시의 몇 가지 기술적 고민과 그 표현의 한계에 대한 갑갑함 때문에 무작정 찾아왔다 했고 (김창희씨와는 ‘WATMM’ 이라는 일렉트로닉 공연을 통해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였음.) 나도 수년간 겪었던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며 몇 가지 현실적 해법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에게 어떤 확실하고 근원적인 해결책이나 조언, 그것이 시장성이던 작업의 컨셉이나 창의성 그 무엇이 되었던 제시해 주지 못했는데 나도 비슷한 고민에 대한 답을 아직 풀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프로젝트와 DAMIRAT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저 막연한 상태에서 "질문" 한다는 것뿐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단순히 그 질문은 "문"(door)에 대한 질문이리라 다시금 추측한다. 문의 크기는? 어떻게 문을 여는가? 손잡이는 어디 있는가? 라는 "문"의 형식과 기능성에 대한 질문이기보다는 "문"의 정의가 형성될 조건이 공간과 공간의 매개점 그 어디에 위치하는지? 공간과 공간의 매개점 아닌 곳에 문짝이 존재할 수 없는지? 같은 뭔가 탈출이나 돌파와 연결된 전혀 생경한 지점을 찾는데 포커스가 맞춰진 현실적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 말이다. 

나는 지금 얼마 전에 발매된 DAMIRAT의 음반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우리가 인텔 쿼드코어 CPU를 이용한 그레인 노이즈와 디지털 쓰레기에 가까운 글리치를 이용하여 던지는 이 쓸모없고 고리타분한 2013년의 "질문"은 아직 누구도 풀지 못한 지난 세기 초엽에 생겨난 모더니티에 대한 "질문" 막연함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을 음반을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막을 수 없게 된다. 다소 억측스러운 분석이지만 나는 이것이 클레(Paul Klee)나 칸딘스키(Kandinsky)의 회화나 만레이(Man Ray) 그리고 크리스티안 샤드(Christian Schad)의 포토그램에서 읽히는 빈약하고 날카로운 불안감과 고체적 이물감과 같은 감정과 맥락에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바꾸어 말해 이는 지난 세기 발현되기 시작한 현대성의 문제, 즉 기술과 점, 선, 면에 의해 촉발되는 공간의 생경한 감정에 대한 이해는 현재까지도 미완인 상태로 유효하다는 생각으로, 20세기 초 이후로 몇몇 예술적 현대성이 미니멀리즘과 클럽과 CPU를 거쳐 다시 이러한 점, 선, 면의 문제로 복기 되었다는 생각이다. 세기 초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각종 도면과 청사진, 캔버스 위의 점들과 선은 컴퓨터 안에서 가청 주파수와 위상이라는 조건을 기반 삼아 재현되었으며 그 요소들은 과거 20세기 초의 모던 회화가 구성하는 프레임과 그림 그리고 그림 안의 기묘한 작도들이 무너져 하나가 되는 순간처럼 지금 이 앨범 안에서 액체화되어 부유하다가 어느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텍스처로서의 총체적 측면을 무르익은 현재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드러낸다.

나는 지금 DAMIRAT의 음반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프로젝트 다미라트의 데뷔 앨범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시각적인 해석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솔직히 다미라트 사운드와 개념을 시각 메타포를 빌어 설명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단말마 같은 노이즈의 단편을 해석하기엔 음표의 용량은 터무니없이 낮다는 생각이다. 변명하자면 IDM이라는 구태한 단어에 의해 매몰될지도 모르는 어떤 진지한 증후군적인 문제나 의식을 설명하는 우둔한 방법이었고 개인적으로 디마리트의 새 앨범을 빌어 표현한 반가움에 대한 미련한 표현이었다. 낯설지만 반가운 앨범이고 첫 앨범치고는 풍부한 사운드이다. 이 사운드 풀에 빠질지 말지는 당신의 감각적, 지적 선택에 달려있다. 이 음반은 일반적인 유희의 룰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자유다. 다만 나는 부유하는 리듬과 모호한 경계성에 입각한 점, 선, 면들의 세련된 재림을 진귀하게 여기며 이러한 작업과 접근이 현대적 우울과 냉소를 모면할 수 있는 차선적 에너지이자 과도기적 방법론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벌써부터 다미라트의 다음 작업이 기다려진다.

Transistorhead
2013. 11. 21  





오대리 다미라트 리뷰


COPYRIGHT 서문

꾸준히 한길로 올 곳이 행보해가는 2인 자웅동체 장인들의 연륜이 묻어나는 성긴 직조물로서의 결과물.


INTRO 앞서서

먼저 밝히는 이 짧은 소견은 체질적으로 장문의 글을 논리 있게 못써나가는 (띄어쓰기도 서투른) 내 글쓰기 실력에 대한 핑계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기존의 전통적 작곡법에 의존하지 않는 음악류의 하나이니 글 또한 그러한 룰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건 핑계고.. 나는 논술 세대도 아니고 조리 있는 긴 글을 아예 못 씀..) 또 이 글쓰기 방식은 내 음악 작법 스타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난 즉흥적으로 생각나는걸 우다다 막 만들고 나중에 그 조각 더미들을 이치에 어느 정도만 통용되게끔 만 보기 좋게 '나열' 편집한다..) 글쓰기 전날 밤 일부러 또는 우연히 다시 보았던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가 이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CORE 본문

장르음악인 블루스, 블루노트를 기반으로 하는 재즈, 엔카, 트로트, 국악 등의 음악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그래서 그 어떤 범위 내에서 곡을 작법해야 하는 불문율 같은 게 있다. (그래서 서로의 음악이 비슷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전자음악 장르의 하나이자 꽤 자유로우면서도 비타협적인 IDM 음악에도 역시나 그 어떤 보이지 않는 범주라는 게 존재는 한다. 또한, 이 분야 장르 작법의 어떤 토대를 완성한 선각자들도 많이 있다. 이 말은 이 특별한 장르의 음악이 십수 년이 흐르면서 많은 시도가 넘치고 많은 창작물이 나올 만큼 나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새로운 아티스트일수록 이 장르의 카테고리 안에서 어떻게 차별화를(되도록 많이) 두느냐는 점인데 그건 모두의 숙제이자 그 어떤 궁극의 지점이기도 하다. 다미라트의 작법은 선조들에 대한 적절한 오마주와 올드스쿨 (그러니까 원류의 베이식)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발전적인 대안을 모색한다는 지점에서 매우 이채롭다. 구사되며 묘사되는 텍스처의 무게와 더불어 결과적으론 굳건한 비타협과 이질성이 공존하는 대안적 스타일로 보이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창작의 접근방식에서부터의 차별성이 실현되며 구현되는 정점이자 이 앨범의 핵심 부분이다. 언뜻 차가워 보이고, 비누 거품 같은 몽글몽글한 결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이것은 모래의 질감으로 해석되며 다가오는 음악으로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대며, 몸부림치며 직조되는 광경이 머릿속으로 목도되는 장관이 연출된다. 언뜻 프리재즈적인 어프로치로 꿈틀거리는 이들의 음악은 당장 몽트뢰 Montreux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한다 해도 전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체험행위로의 듣기...노이즈와 글리치 그리고 타임스트레칭...그러니 구조의 기승전결 따위도 잊어버려라.내가 느끼고 좋아하는 비주류 음악들의 장점은 쉽게 바로 즉각적으로 다가오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질리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깊고 생명력이 길다.)당신이 평상적 듣기 행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슴을 후벼 파는 이들의 음악에서 멜로디를 애써 찾으려 하지 마라.파내도 파내도 끊임없이 물이 솟구치는 우물 샘처럼 이들의 음악은 듣고 보는 장소,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 또한 달라진다.에이펙스트윈의 어떤 앨범의 낯선 게일어 제목, 시규어로스의 아이슬란드어 제목처럼 낯설게 다가오는 다미라트의 앨범 타이틀, 곡 제목의 뜻을 일부러 유추해 보려는 행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다가오고 느껴지는 이 낯선 모든 게 다미라트를 이해하는 '그" 어떤 것이니까.탐미적이고 탐험 적인 음악 취향을 지닌 사람에게 올해의 뜻깊은 선물이 될 것임에 자명한, 소중한 음반이다.

OUTRO 글을 맺으며

척박한 한국 전자음악씬에 어떤 신선감을 불러일으켜 준 장본인 다미라트는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게 만드는 한마디로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크리에이티브한 그 어떤 '정의'이다.


P.S 추신

예전에 Autechre가 Merzbow의 어떤 곡을 "Bondage Remix" 한 것처럼 나도 향후 다미라트 EP 수록곡 중의 하나인 L.Delt 을 과감히 리믹스 & 재조립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REMEMBER 어떤 회고

지난 2012년 12월 즈음 무대륙 사장님으로부터 다가오는 12월 24일 성탄전야파티에서 IDM 음악을 하는 비주얼이 결합된 어떤 밴드가 1층에서 공연을 하게 될 텐데 기술적인 음향 등 등을 신경 써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평소에 무대륙 사장님의 음악 선호 취향을 직접 들어서 알긴 했지만, 성탄파티에서는 나름 실험적이거나 무거울 법도 한 IDM 성향의 선택은 꽤 예외였다. 그러나 처음 접한 그들의 공연은 꽤 그 공기에 어울렸으며 예사롭지 않은 안정감이 조합된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그즈음 바로 그때, 모든 것은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서서히 다가왔다. 말구유에서 아기 예수가 새 생명으로 탄생했던 그 시간 즈음에 무대륙 1층을 감싸는 분위기는 가브리엘 천사들이 축송하며 주위를 감싸듯 왠지 모를 훈훈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광경을 내가 동방박사라도 된 듯 직접 그 자리에서 목도했다. (영광스럽게도) 성탄전야에 예수가 탄생하며 기적이 일어난 건지 은총이 내려진 건지.. 어떻게 보면 바로 그때가 바로 WATMM의 시발점이었다. 그것은 다미라트의 고집, 저돌성과 사장님의 결단력 있는 과감함이 결합하여 탄생한 어떤 시류의 시작 지점이었던 것이다. 그 후 2013년으로 넘어와 향후 영기획, 오디오로그 등의 조력자들과 진행되며 발전해 나가는 WATMM의 행보를 옆에서 조금씩 지켜본 나도 많은 걸 느끼고 배우며 (혜택받으며) 성장하여 온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와트엠은 영기획, 오디오로그 등과 더불어 한국 전자음악 1세대와 전자음악 2세대가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가교역할이자 정거장 또는 어떤 기폭제 역할을 충분히 했으며 이 씬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곧 있을 1주년 WATMM 공연은 그동안의 결실이 다시 한 번 재조명되며 모두와 축복을 함께하게 될 구심 지점이 분명히 될 것이다.


오대리
2013. 11. 24